메시지와 메신저

LA 크리스찬 투데이 연재 2015/07/25. 7회/총8회

“살려주세요!”
제가 전도사로 처음 설교하게 되었을 때 강대상 아래서 진땀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혼자 외쳤던 기도였습니다. 사람들 앞에 떨려서 서지 못하고,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저는 부르심을 받아 사역자가 되긴 하였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처음이라 막상 입이 제대로 떨어질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한번 있긴 했습니다. 대학 때였는데 뜻하지 않게 학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신입생 앞에서 과소개를 하는 그 중요한 시간에 얼마나 떨었던지 끔찍한 악몽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장 고민이 되었고 주님께 확답을 받고 싶었던 것은 과연 제가 많은 사람 앞에서 떨지 않게 되고 말을 더듬지 않고 설교할 수 있도록 고쳐주시겠는가였습니다.
 
저의 절실한 기도는 "말씀을 잘 전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 였습니다. 말 더듬는 것을 고쳐주지 않으신다면 차라리 이곳에 지진이라도 나게 하셔서 이 상황을 없어지게 해주시든지 하셔서 제가 저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예배를 망치지도 않고 저에게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였습니다. 그때 감동으로 주신 응답은, '고쳐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네가 나를 가장 사랑하느냐?'였습니다.
 
그날 그때 첫 설교 이후로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을 더듬지 않고 설교하는 것이 그저 평범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매번의 설교 때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살려주세요!”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엔 좀 다른 의미의 기도입니다. 이젠 말을 더듬더라도, 말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전하는 말씀과 저의 삶이 일치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 연이어 들려오는 안타까운 교회에 관한 뉴스들을 보면 그동안 말씀을 잘 전해 온 교회들이긴 했지만, 그 전해왔던 메시지와 메신저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메신저이신 예수님은 복음인 하나님의 메시지와 일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님 자신이 메시지이셨습니다. 삶뿐만 아니라 전 인격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지(말씀)이시고, 메시지(말씀)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다시 사심도 말씀(성경)대로였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절과 4절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말씀을 단지 잘 전한다고 해서 말씀이 증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이 진정 말씀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날마다 몸서리치도록 부족감을 느끼는 저이지만 몸부림치며 메시지와 메신저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 메신저 자신이 메시지인 예수님을 계속해서 닮아가기를, 감히 이러한 은혜를 얻도록 다시 한 번 “살려주세요!”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차정호 선교사 | 기사입력 2015/07/25 [01:19] 크리스찬 투데이